오늘 우리에게 사무실이 생겼다. 도희와 나 모두에게 익숙한 이 공간은 사실 우리 할아버지의 사무실이다. 할아버지가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근 일 년간 쓰임 없이 방치되어 있던 이곳을, 기간은 얼마가 될지 모르겠지만, 임시로 빌려 쓰게 되었다. 어릴 때는 할아버지 사무실에 꽤 자주 갔었다. 어린 눈에 비친 그곳은 그저 온갖 신기한 보물들이 가득하고, 짭짤한 먹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. 커다랗고 묵직한 가죽 의자는 도저히 내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무엇이었고, 그곳에 앉아있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커다란 바위산 같았다. 할아버지는 때때로 붓글씨를 쓰고 계셨다. 할아버지께서 내 주먹보다도 큰 붓으로 새까만 먹을 휘저을 때, 나는 그게 글씨인지 뭔지도 모르면서 마냥 ‘우와~’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 같다. 몇 년 만에 그 문을 열었는지 모르겠다. 사무실은 그 모습 그대로이기도 하고, 아니기도 했다. 수많은 액자와 물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어 흡사 박물관처럼 보이기도 했다. 할아버지의 역사가 이렇게나 가득한데.. 머지않아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서운하고 허탈해 서둘러 사진부터 남겼다. 폐가 되어선 안 된다. 언젠가 우리가 이 사무실을 떠나야할 때,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더 성장해서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떠날 수 있다면 좋겠다. 12 November 2020Noru Yang